

풍경을 그린다고 해서 언제나 나무와 물만 보이는 건 아닙니다.
어떤 풍경에서는 장소보다 시간의 흐름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북촌의 작은 갤러리에서 만난 이미경 작가의 개인전 〈우포늪, 찰나에서 영원으로〉가 그랬습니다.
짙은 파랑, 보라, 주황이 수평으로 겹겹이 쌓인 화면들은 실제 풍경이라기보다 “어떤 하루의 온도”를 보여주는 색의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우포늪은 경남 창녕에 있는 습지이지만, 그림 앞에 서 있는 동안에는 각자의 기억 속 호수와 들판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갤러리 안에는 나무색이 은은하게 도는 원목 액자가 작품을 감싸고 있습니다.
과하게 튀지 않는 프레임이라, 색이 화면 안에서 조용히 빛나고 전체적인 인상이 ‘집에 걸어두고 싶은 풍경’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전시 정보
- 전시명: 이미경 개인전 〈우포늪, 찰나에서 영원으로〉
- 작가: 이미경
- 기간: 2026. 2. 4(수) – 2. 28(토)
- 장소: 갤러리 단정 (서울 종로구 북촌로5가길 8-7)
- 관람시간: 11:00–18:00 (토요일 18:30까지,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작은 갤러리 전시 기준, 방문 전 갤러리 안내 확인 추천)
- 문의: 02-6104-0058 / 인스타그램 @gallerydanjung

1. 색의 층으로 읽는 우포늪
붉은 노을, 푸른 새벽, 보랏빛 안개… 화면 전체가 가로 방향의 색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세밀한 묘사보다는 색의 분위기부터 먼저 전해집니다

2.작은 배·나무가 만드는 이야기
몇몇 작품에서는 아주 작게 배나 나무가 등장합니다. 화면의 90%는 색면인데, 그 작은 요소 하나 때문에 갑자기 “누가, 언제, 어디로 가고 있을까?”라는 이야기가 생깁니다

3.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풍경의 변화
단층 주택을 개조한 공간이라 방을 옮길 때마다 색의 톤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한 방에서는 보라·핑크 계열이, 다른 방에서는 푸른 톤이 중심이 되어, 시간대가 바뀌는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4.원목 액자가 더하는 여백감
프레임이 너무 화려하지 않아, 화면과 벽 사이에 한 번 더 숨을 고를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줍니다. 작품을 거실이나 서재에 걸어 두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 보기 좋았습니다.
이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붓질의 반복입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일정한 방향으로 겹겹이 쌓인 선들이 보입니다.
이 반복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우포늪에서 보낸 시간을 담은 호흡처럼 느껴집니다.
물 위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 안개가 걷히는 속도, 해가 떨어지는 찰나… 작가는 이런 순간들을 ‘한 번에’ 그리지 않고, 여러 번의 관찰과 기억을 겹쳐 올립니다.
그래서인지 화면은 고요하지만, 그 안에서는 미세한 떨림과 파동이 계속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파란 계열 작품들은 물결과 하늘, 나무의 실루엣이 하나로 섞여 있어, 어디까지가 물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서, 풍경은 현실의 장소를 넘어 개인적인 기억의 공간으로 바뀌게 됩니다.
- 작품은 전체적으로 은은한 톤이라, 휴대폰으로 찍을 때는 너무 밝게 보정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실제 분위기는 조금 더 차분합니다.
- 전시장 바닥이 카펫이라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아서, 사진 찍으면서도 주변 관람객에게 방해가 덜 됩니다. 대신 셔터음·대화 소리 정도만 한 번 더 신경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 우포늪을 실제로 가본 적이 있다면, 집에 돌아와서 예전 사진과 그림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림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기억인지 더 잘 보입니다.
복잡한 설명 없이 색과 호흡으로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시였습니다. 북촌 산책길 중간에 잠시 들르기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조용히 머물러 보기에도 괜찮은 규모입니다.
2월에 차가운 공기를 조금 들이마신 뒤, 따뜻한 색의 풍경 속에서 잠깐 쉬어가고 싶다면, 갤러리 단정의 이미경 개인전을 한 번 관람해 보시는 건 어떠실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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